“낮과 밤 사이에서” 송지혜 작가의 개인전에 앞서
김시하(Artist)
시작은, 작가의 낮과 밤 같은, 혹은 작가 작품의 ‘해와 달’ 같은 두 눈이다. 작가의 시선은 주체가 아니라 그 너머,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주체 밖의 곳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오만가지의 현실에 머문다.
그간 송지혜의 작업은 개인전 전시제목만으로도 분위기와 내용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아슬아슬(2020, 아트비트 갤러리), 대롱대롱(2018, 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 등 사회라는 거대 체제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가리고픈’감정, 시선, 등을 담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가장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관찰되는, 보기에는 별것 없는 매일이 작가의 작품 안에서 보통 사람들의 부재와 불안을 담고, 아슬아슬한 경계에서의 삶으로, 그리고 그 삶의 이면 너머의 사회와 세계로 확장되고 실현되어 왔다. 이를 위해 작가는 보폭을 달리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다.
송지혜가 가진 독창적인 미감은 마치 행간 같은 이 “거리감”에서 나온다. 누가 봐도 불편하고 어색한 시선을 작가는 물러서서 바라보는데 이는 처음에는 관찰자의 시선인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도 한 번쯤 마주했거나 또는 스쳐 지나갔던 익숙한 상황들, 장면이라는 점에서 당사자로 주체가 바뀌어 감정 이입이 되기도 하는 기이한 상황에 놓인다. 이 상황들은 사실 우리에게는 평범한 보통의 날들이다. 단지 드러나지 않거나 드러내어 놓지 않았거나. 아니면 들켰거나, 들키지 않았거나, 그 기로일 뿐.
이번 전시 <낮과 밤 사이에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이 불편함을 관조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앞서서 행간이라 칭한, 경계와 틈에 주목한다. 2021(금단의 복숭아, 룬트 갤러리), 2022(시스루, 인가희 갤러리)년에 보여 준 두 번의 개인전은 작가 개인의 역사, 그리고 여성으로서 목도한 개인의 시선을 다루었다면 이번 전시는 이를 넘어 사회 전반을 바라보는 작가의 세계관을 여실히 보여준다.나와 인간존재에 대한 의문, 그 속에 실타래처럼 얽힌 인간의 관계,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사회와 세계 속에서 온몸으로 체득되는 불안감을 작가는 지속해서 그려왔고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해를 거듭하면서 좀 더 적당한 거리를 찾아내는 노력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확보되어야 하는 거리를‘Personal Space’[i] 라 부른다. 이 개체 공간(개인 공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불안과 위협을 느끼지 않는 최소한의 방어지지선 이기도 하고, 이 같은 구분으로 나와 타인의 친밀도 단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작가의 작품은 정확히는, 작가 자신이 설정하는 이 line상에 위치해야 지나치지도, 넘치지도 않게 불편한 시선을 그려내고, 나인 듯, 타인인 듯, 주체의 교란을 끌어내 불안감을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이를 위해 작가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아니 학습한, 완벽한 구도와는 다른 구도를 선택해 그린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익숙하게 보거나 사진을 찍거나 그리거나 표현하는 구도의 모델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차 안에서 보는 듯한 시선의 작품 ‘늦은 여름’과 ‘winter, 7:35pm’ 은 차 안의 일부를 더 많이 생략한 구도를 선택했고, Dream 작품에서는 마치 캔버스를 반으로 잘라낸 듯한 과감한 시도를 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묘한 가시감과 불안정함은 아름다운 밤의 풍경이거나 해변의 풍경, 밤의 풍경일지라도 쓸슬함과 불안, 불편, 그리고 이야기를 불러오는, 다양하고 기이한 공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촉매가 된다.
또 다른 이번 전시의 특징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스틸 컷들이 모여 하나의 장처럼 펼쳐지는 연속성이다. 개별 작품들은 하나의 스토리로 탄생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긴 장편 영화의 장면(Scene)을 모아 놓은 것처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을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구체적인 하나의 사건에 대한 해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그를 둘러싼 여러 상황적 연출(미장센)이 이루어졌을 법한 서사 구조를 지닌 채, 캔버스에서 과감하게 생략된 이미지들은 마치 은폐된 진실, 가려진 현실처럼, 궁금증과 호기심, 긴장감을 자아낸다. 또한 종종 ‘9:25 pm’, ‘11:58pm’등과 같은 시간이 작품 제목으로 쓰였는데 이런 구체적 시간순 배열은 앞서 말한 작품의 서사 구조에 힘을 보탠다. 이런 요소는 작가의 작품이 단순히 사진을 찍은 듯한 스틸컷의 이미지가 아니라 대상과 대상이 놓인 상황, 위 치를 연상케 하는 수단이고 영화적 구성, 연속성을 획득하게 하는 장치이다.
거리감과 연속성을 포함하여 송지혜 작가의 작품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불편함과 불안”이 두 단어가 포함된 워딩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작가노트를 포함해 글에 지속해서 등장하는 이 단어는 전자는 그의 시선이고 후자는 그로부터 촉발된 감각을 일컫는다. 우선 전제적으로 작가는 사회문제, 현실 문제, 보통인으로서의 삶의 어려움, 사회 속에서의 불편한 관계 등을 의식하면서 포장된 삶의 가려진 면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그려왔다. 그것은 대부분, 밝고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모습이거나 은밀하거나 고독함을 불러오는 이미지로 정서적 불안을 유발하는 장면이다. 이번 전시 제목 <낮과 밤 사이에서>는 이 양가적 상황과 시선을 유추하게끔 한다. 낮과 밤에 시선이란 단어를 첨부해 낮에 보는 시선과 밤에 보는 시선이라고 구분해 보면, 낮에 보는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던, 대놓고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불편한 관계, 가려진 면들이 밤의 시선으로 볼 때에는 보이는, 드러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그렇게 낮과 밤이 교차하는 그 선상에 서서 세계를 관조하는 작가의 시선(사이에서), 경계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경계는 균형 배분에 따라 유동적이다. 그 경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세웠다가 지웠다가 옮겼다가 하는 유동적인 상태이다. 하지만 그 경계를 설정하는 작가의 시선은 변하지 않는다. 작가의 독특한 방식의 세상보기는 변하지 않고 그 시선이 주는 두 단어는 결국 작가의 독창성과 차별성을 결정짓는다.
작가의 관조적 시선은 기실 삶의 균형을 위한 것이다. 삶은 어느 한 면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다중적 시선과 의미가 공존하며 내가 보는 것과 보지 못한 것 사이의 관계역시 존재하며 다중적 의미의 층위가 존재한다. 균형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작가의 경계선에 끌어당겨야지만 맞출 수 있다. ‘해와 달’, ‘화살’ 등의 작품에서처럼 팽팽하게 균형을 맞추려 드는 상대적인 다른 하나가 있고 관통하거나 끌어당겨 나와 타인을 이어 붙이는 작품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을 전제로 한 독특한 정서, 그 정서가 균형을 추구하는 작가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의 지점(Line)에서 오는 불편과 불안이라면 기꺼이 그 균형 찾기에 참여해, 순간 무너진 현실에서 균형을 마주하는 찰나를 나 또한 목도하고 싶다.
작가는 첫 개인전(유인도)부터 쭉 구상회화를 고집해왔다. “상실한 현실을 예술적으로 회복하는 한 방법으로서 우리는 구상회화를 생각하게 된다”는 말처럼 작가는 ‘삶이라는 현실’을 구체적이고 바로 인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리고 ‘현실이라는 삶’을 그려내는 회화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담는 방식으로 구상회화를 탐구한다. 작가의 최근 작품들은 점차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사회, 세계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흥미롭다. 작가 개인의 내러티브는 물론 작품에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개인을 이루고 구성했을, 보다 넓은 단위의 공동체를, 사회를,세계를 읽어냄으로써,그리고 그것에 휩쓸리기보다는 적절한 거리를 두고 바라봄으로써, 작가는 유의미한 결과를 내고 있다고 보인다.
덧붙이기,
최근에 작가는 작품 이미지 하나를 보내왔다. 문틈 구멍 사이로 보이는 불빛이 그려진 작은그림이었다. 앞서 설명한 작품들보다 덜 불안하지만 쓸쓸했고 기이하면서도 희망인지, 부재인지 모를 작가 특유의 모호함이 담긴 정서가 짙다. 송지혜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존재하지만, 대면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지만 깊숙이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그 불편한 듯한, 그 감각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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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에 일정한 물리적 거리를 두려고 한다.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두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 주변에 일정한 사적(私的) 공간이 확보되어야 스스로 안전하다고 여기고, 그 공간이 침해되면 불편, 불안, 분노 등을 느끼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개인이 심리적으로 자신의 공간이라고 인식하는 자기 주위의 영역을 가리켜 개체 공간(personal space)이라고 한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금단의 복숭아: 섹슈어리티와 모성의 경계
The Forbidden Peach: Between Sexuality and Motherhood
인가희
이태원의 후미진 골목에 자리 잡은 1.5평의 룬트 갤러리에 설치된 송지혜의 The Peaches는 핑크빛 조명 아래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하듯 붙잡는다. 전시 ‘금단의 복숭아‘는 윈도우 갤러리 공간을 가득 채운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캔버스에 13개의 복숭아가 그려진 정물화 The Peaches와 복숭아 단면이 묘사된 다섯 점의 작은 페인팅, The Sliced Peach, 그리고 이들을 비추는 핑크색 LED 전등으로 구성된다. 오묘한 오렌지 레드 빛깔의 복숭아가 그려진 The Peaches는 벽면이 아닌 윈도우 가까이 위치한 천장에 낚시줄로 고정되어 있다. 펑키한 핑크 조명이 전시 공간과 외부를 은은하게 감싸고, 공중에 부양되는 듯한 The Peaches는 보는 이들에게 마치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또한 무결점의 복숭아 껍질 표현, 원근법을 무시한 평면적 구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햇빛과 핑크빛 인공조명 아래 연출되는 복숭아의 발광으로 인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The Sliced Peach는 천장에 매달린 The Peaches 아래 바닥에 사선으로 설치되어 관람객에게 도발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갤러리 윈도우와 닫힌 문은 관람자와 작품 사이에 물리적인 장벽을 만들어, 서로 절대 닿을 수 없는 금단의 복숭아가 되어 버린다.
The Peaches를 가까이에서 보면, 복숭아의 골이 파인 형태, 하얗고도 노르스름한 과육과 검붉은 씨앗의 상세한 묘사가 각각 여성의 둔부, 속살, 그리고 음핵을 연상시킨다. 특히, 작가는 작품의 왼쪽에 위치한 불룩 튀어나온 검붉은 씨앗의 주변을 핏빛으로 그라데이션 함으로써, 하얀 복숭아 속살에 대비해 그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켰다. 작가는 작품 오른쪽 부분에 위치한 씨앗이 빠진 부분을 장기 내부의 융털과 주름 잡힌 핏덩이처럼 묘사했으며, 이는 마치 여성의 질 안 깊은 곳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송지혜의 복숭아는 에로틱한 살(flesh)을 가진 의인화된 복숭아가 된다. 그의 작품에서 복숭아의 과육이 여성의 살이라면, 씨앗은 여성의 성기와 더불어 생명의 근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복숭아씨를 부드럽게 감싼 과육은 태아를 품고 있는 여성의 자궁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시 제목에서 보여주듯, 『금단의 복숭아』는 관람객이 닿을 수 없는 금단의 장소에 있는 열매이자, 공공장소에서 보여서는 안 될 금기의 여성 성기를 담은 열매이다. 그리고 작가에게 있어서 금단의 열매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작가가 말할 수 없는, 아니 말하기 힘들어 침묵하고 마는 금기, 여성의 섹슈얼리티일 것이다.
송지혜 작품에서 보이는 의인화 방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6년부터 작가는 불안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주변의 불특정 다수의 삶을 냉소적으로 의인화하여 ‘불쾌함‘과 ‘불편함‘을 전달하곤 했다. 그러나 송지혜가 은유(metaphor)를 통해 타인이 아닌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은 이번 작품이 처음이다. 송지혜는 여느 때와 같이 자녀를 위해 과일을 자르다 우연히 복숭아 단면에서 핏빛으로 물든 듯한 ‘연약한 살성‘과 ‘여성의 성기‘를 연상하는 씨앗을 발견했다.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듯한 복숭아에 대해, 그녀는 “여성의 성기는 섹스를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생명이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욕망과 성스러움이 있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곳이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또한 “씨 주변의 붉은 과육은 마치 핏빛으로 물든, 상처 입은 내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하며 복숭아를 통해 개인적인 아픔을 드러냈다. The Peaches는 단지 에로틱한 과일 정물화가 아닌 복숭아에 작가의 삶을 투영한 자화상인 것이다. 40대에 접어든 여성 그리고 10대에 접어든 아이들의 엄마인 1980년생 송지혜는 The Peaches를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 모성, 그리고 아픔이 드러나는 복합적인 그의 삶을 표현하고자 했다. 송지혜의 복숭아는 여성의 성기이자 산도(birth canal), 그리고 고통인 것이다.
성서 창세기에서 언급된 원조 ‘금단의 열매‘는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유일하게 금지한 선악과나무의 열매이다. 그러나 뱀의 유혹으로 아담과 이브가 열매를 따먹음으로써 이 금기는 깨졌다. ‘금단의 열매‘는 하나님 말씀을 어긴 인간의 원죄를 상징하며, 이러한 나레이티브를 담은 장면은 프리 모던(pre-modern) 시대부터 서양미술사 안에서 수없이 재현되어 왔다. 원조 금단의 열매가 먹기를 금지했다면, 송지혜의 금단의 열매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금지한다. 관람객은 복숭아의 에로틱한 에너지에 끌려 다가가지만, 그들은 그저 윈도우 밖에서 서서 자체 발광하는 듯한 신비스러운 복숭아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금단의 영역 안에 있는 복숭아는 마치 그 누구도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모성, 그리고 그 안의 수많은 감정으로 뒤얽혀 있는 고통을 담은 작가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복숭아는 누구도 다가가지 못한 그 금단의 공간 안에서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주길 원하듯, 24시간 전등이 꺼지지 않는 불빛 아래 밤이 되면 더욱더 화려하게 발광한다.
The Forbidden Peach: Between Sexuality and Motherhood
Gahee In
Song Jihye’s The Peaches, installed under seductive pink lighting in the tiny sized Runt Gallery, captures the gaze of passersby in a back alleyway of Itaewon. The still life painting depicts thirteen peaches on two differently sized canvases and is part the exhibition ‘Forbidden Peach,’ which also includes The Sliced Peach, five smaller paintings depicting sliced peach sections, and the pink colored LED light bar that illuminates them all. Subtly painted with orange-red hues, The Peaches is suspend from the ceiling with fishing line situating it in close proximity to the window rather than the wall. The five panels of The Sliced Peach are installed diagonally across the floor beneath The Peaches, and the funky pink lighting gently engulfs the exhibition space and spills out onto the exterior of the gallery. As it appears to float in the air, the ethereal presentation of The Peaches evokes the illusion of standing at the boundary between reality and fantasy. Additionally, the representation of flawless peach peels, the flatness of the composition, which ignores veristic perspective, and the interplay of the artificial light and ever-changing sunlight contribute to the fantastical atmosphere. Overall, the installation proves to be both enticing and provocative. However, the window and closed door of the gallery serves as a physical barrier cutting off the viewer from any possibility of reaching the artwork and turning the peaches into a forbidden fruit.
Looking closely at The Peaches, detailed depictions of the peach’s ribbed form, white and yellowish flesh, and darkish red pits are reminiscent of the female buttocks, skin, and clitoris, respectively. In particular, on the left side of the composition, the artist further emphasizes the prominent dark red pit in contrast to the white peach flesh by gradating the periphery of the pit with a blood red color. In addition, on the right side of the composition, the artist portrays the holes left by the removed pits, and the visceral textures of the ridges and wrinkles allude to the deep interior space of a woman’s vagina. In a sense, Song Jihye’s peaches become an anthropomorphic fruit with erotic flesh. As the flesh of the peach becomes the flesh of the woman in her artwork, the pits can also be interpreted as a root of life along with a woman’s genital. The pit enrobed in the flesh of the soft fruit looks like a fetus nestled within a womb. The title of the exhibition, ‘The Forbidden Peach’ not only references the physical separation of the art and viewer, but also the forbidden nature of female genitalia that is not general displayed or discussed in public places. For the artist, who is also a mother of two children, the forbidden fruit is the sexuality of women, and the bodily allusions embedded in her paintings of peaches allow her to bypass societal taboos of openly acknowledging or discussing the sexuality of women.
The method of anthropomorphism used by Song Jihye in these works is not new. Since 2006, the artist has cynically personified the lives of an unspecified number of people around her to explore the conditions of living in an unstable modern society and to convey the uneasiness and unpleasantness that accompanies it. However, this is the first time that Song Jihye has elected to contend directly with her personal experiences rather than the experiences of others, which she accomplishes through the metaphor of a ‘peach.’ While cutting seasonal fruits for her children, Song Jihye accidentally discovered pits reminiscent of “soft flesh” and “female genitals” that seemed to be stained with blood on the peach section. Regarding the ways in which peaches may seem to portray a woman’s genitals, the artist said, “Women’s genitals are not only where sexual activity occurs, but also where life comes from. It is a place that has a dual meaning of desire and sacredness.” Additionally, the artist stated, “I thought that the red flesh around the pits was like myself wounded in blood stains,” expressing her personal pain through peaches. The Peaches is not just an erotic fruit still life, but also a self-portrait that projects the artist’s life onto a peach. Born in 1980, the artist is a woman in her 40s and the mother of children in their teens. Song Jihye tried to express the complexities of her life such as sexuality, motherhood, and pain through The Peaches. Song Jihye’s peach is a woman’s genitalia, birth canal, and suffering.
The original ‘forbidden fruit’ mentioned in the Bible’s Genesis is the only fruit of 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at God forbids Adam and Eve to eat. However, this taboo was broken as the serpent seduced Eve, and Eve ate the fruit and Adam eventually ate too. The ‘forbidden fruit’ symbolizes the original sin of man who violated God’s word, and scenes containing such narration have been reproduced countless times in Western art history since the pre-modern era. If the original forbidden fruit was forbidden to eat, Song Jihye’s fruit forbids the viewer from coming into close contact. Audiences are drawn to the erotic energy of Song Jihye’s peaches, but they have no choice but to stand outside the window and just look at the mysterious peaches that seems to emit from an unreachable forbidden realm in which the artist’s life, including her sexuality, motherhood, and pain, is not easily understood, but elicits a range of emotions. However, as the pink light continuously illuminates the paintings day and night, the peaches extend beyond the life of the artist as if reaching out for someone to recognize themselves in that forbidden space that no one has ever reached.
도시공간의 구조화 기능 읽기, 유인도 리포트
김준기
낱개의 삶이 밀집한 도시공간은 어떻게 인간 개체의 삶을 구조화 하고 있는가? 송지혜는 유인도라는 낭만적인 언어를 제시함으로써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현대도시의 건축이 인간의 삶을 배치하고 지배하면서 광범위한 시각적인 환경으로 작용한다는 점에 대한 체험적인 성찰로부터 출발한다. 그가 말하는 유인도의 모습은 불꺼진 여러 개의 방들과 드문드문 불켜진 방들의 조합에 의해 하나의 시각적 구조체로 다가오는 아파트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동일한 구조를 가진 격자무늬의 아파트의 개별 공간들은 불꺼짐과 불켜짐에 의해 있음과 없음으로 구분된다. 송지혜는 그것을 단순한 시각적 구조체로 파악하기보다는 도시의 삶의 공간이 도시인들의 삶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있는가에 관한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 한국적 압축성장의 절정기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지낸 그는 십대 중후반에 서울 창동의 아파트단지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 11층에서 건너편 아파트들의 모습을 지켜보곤 했는데, 이러한 체험은 오늘날 그가 거대도시 속에 박혀있는 개별적인 삶의 정황들을 포착해내는 데 있어서 매우 구체적인 매개 체험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늦은 밤까지 혼자 깨어있어야 하는 날이면 건너편에 드문드문 불켜진 방들에 박힌 낱개의 삶들을 어렴풋한 실루엣으로 바라보면서 저렇게 많은 삶들 중에 그 자신의 삶의 그림자가 묻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송지혜 자신이 체험했던 아파트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구조화한 도시공간과 개체의 그림자들을 담고 있다.
조밀한 그리기 작업을 비롯해서 평면설치와 입체설치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바라보기‘로 명명해온 주제의식을 풀어온 송지혜는 인물의 뒷모습을 담은 「뒤」 연작에서 사각의 평면 위에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세필로 묘사하는가 하면, 때로는 사각틀의 캔버스로부터 벗어나 인물의 윤곽선을 따서 만든 커다란 구조물 위에 사람들의 뒷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이 연작들은 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주체의 관찰자 시점을 통해서 익명성 속에 담긴 개별적이고 특수한 삶의 정황들을 포착한 것이었다. 이때 그의 섬세한 머리카락 묘사는 그 자체로서 강렬하게 시각적인 자극의 요소로 작용했다. 그는 이러한 머리카락 그림이 익숙한 캐릭터로 안착할 즈음에 또 다른 풍경과 장면을 서술해내기 시작했다. 아파트 모형을 만들어서 그 속에 일러스트 같은 작은 인물상들을 배치한 「이 편한 세상 119」는 동일한 구조 속에 각각 다르게 배치되어 있는 인간의 삶을 담아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독립된 개체로 바라보기만 하던 이전의 작업에 비해 훨씬 더 구조적인 시각을 가진 것이었다. 도시화한 현대사회 속에서 인간이 존재하는 환경으로서의 아파트 공간이 어떻게 인간을 구조 속의 개체로 구조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그림에 여러 개의 장면과 상황을 겹쳐서 넣는 중층적인 레이어 구성방법은 내러티브 구조를 보다 풍부하게 만든다. 설연휴를 맞아 모두들 떠나고 없는 회기동 일대의 상가건물들과 그 뒤편 주택가의 노후한 건물들과 그 뒤편의 저토록 세상 편해 보이는 고층 아파트 ‘이편한세상‘을 부감법으로 내려다보도록 구성한 작품 「구정날 회기역 방향」은 송지혜식 그림그리기의 특징인 부분적인 섬세함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한 화면에서 집중묘사의 밀도를 조절하는 일종의 ‘선택과 집중‘인 셈이다. 삼중구도의 건물들 가운데서 그가 방점을 찍고 있는 부분은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려낸 상가 간판과 더불어 상가 건물들이 죄다 셔터를 내려놓고 있는 상황이다. 귀향길에 오른 차량 행렬을 그린 다른 작품 「구정날 나들목」에서도 제각각인 차량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그려내고 있다. 텅 빈 도시와 기나긴 차량 행렬은 속이 드러나 보이는 「구정날 묘지」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송지혜가 가지고 있는 전체와 부분, 구조와 개별에 대한 생각이 집약되는 대목이면서 동시에 이 전시 전체의 문맥을 인도하는 프롤로그 같은 작업이다.
격자구조 속에 배치된 익명인의 모습을 압축하고 있는 아파트라는 건축구조물을 통해서 구조와 개체의 문제를 체감해온 송지혜는 아파트를 그림으로써 아파트의 구조화 기능을 드러낸다. 단색으로 처리된 도시의 아파트 숲 위로 내리꽂히는 인체들이 그려진 「익명의 비」는 익명인의 파편화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발가벗은 인체들은 남녀노소의 익명의 개별자들이다. 도시에 흩뿌려지는 빗방울처럼 불특정 다수의 익명의 인간들이 아파트 숲속으로 흩뿌려진다. 주변 환경이나 평형의 크기와 상관없이 도시의 공간 속에 고립된 섬처럼 떠있기는 임대아파트나 타워팰리스나 마찬가지다. 아파트 숲에 떨지는 ‘익명의 비‘는 거대도시에서의 삶을 선택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숙명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송지혜가 바라보는 도시인의 삶을 이렇듯 비처럼 흩뿌려지며 동시에 외로운 섬처럼 도시의 바다 위를 부유한다. 벽체를 사이에 두고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은 무인도보다 더 적막한 유인도로 각인된다. 길을 가다가 문득 바라본 동네 한구석의 반지하 셋방에서, 건너편 아파트 단지의 불켜진 어느 방이나 고시텔 쪽방에서, 수퍼마켓 2층의 어느 방에서 새어나오는 구조 속 개체의 쓸쓸한 모습을 슬쩍슬쩍 담아내고 있다. 그의 특이한 표현대로라면 ‘냄새만 살짝 풍기는‘ 방식이다.
건물의 특정 부분을 확대해서 그린 ’00이 보이는 00′이라는 제목을 붙인 몇몇 작품들은 도시 삶 속에 구석구석 묻어있는 구조 속 개인들의 편린들을 잡아낸 한 컷의 스냅사진 같은 그림들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기는 하지만 섬처럼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각각의 방을 엿보듯이 들여다본 이 유인도들은 거대한 그물망이면서도 개별자들의 고립을 피할 수 없는 도시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작은 화면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평면화된 건물 외벽에 창을 하나씩 만들고 그 속에 낱개의 삶을 살짝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창문 안에는 여러 가지 삶이 날것으로 널려있다. 타일로 외관을 마무리한 다모아수퍼 윗층집 방에는 빨간 이불이 보인다. 골목길을 가다가 슬쩍 엿보이는 반지하 어느 남자의 빈방에는 회전의자가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어느 건물의 반지하 화장실의 전구 불빛도 낮선 삶의 흔적을 상기하기에 충분하다. 두란노타운 고시텔의 석회벽 한 켠에는 쪽방 삶의 애환이 자리잡고 있다. 파란 티브이가 보이는 아파트 거실은 늦은 밤 까만 밤풍경 속에 드문드문 불켜진 방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구조속의 인간개체에 대한 감상을 이끌어낸다. 초콜렛의 격자무늬처럼 생긴 빌딩 한구석에 빼꼼이 열린 창문은 빌딩에 인간미를 부여하는 거의 유일한 장치이기도 하다.
자신이 직접 찍거나 인터넷 상에서 채취한 사진이미지들을 캔버스에 전사하고 그 위에 붓질로 마감한 회화작업들도 도시의 건축물 공간 속에 떠있는 섬들에 주목하고 있다. 한 노인병원에서 찍은 사진 이미지를 사용한 「효자노인병원」은 노인돌봄시설이나 실버산업의 허울을 드러낸다. 조회장면을 포착한 사진을 전사 후 뒤편에 학교 건물을 그려낸 「바른스승바른제자」는 교육권력 공간인 학교가 학생들을 구조화하는 상황을 포착한 작품이다. 「뉴스속보입니다」는 빌딩숲 전광판의 뉴스속보 장면 사진과 흐릿한 빌딩 실루엣의 회화이미지가 겹쳐진 작업이다. 빌딩실루엣 속의 전광판은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뉴스를 토해내는 언론권력의 담지체이다. 이밖에도 아파트 빈 거실이나 영안실, 오피스빌딩 공간 등도 현대도시의 건축물이 인간을 배치하고 지배하는 모습들을 담고 있다. 이들 사진과 회화를 혼합한 작업들은 구체적인 실재의 상황을 담고 있으면서도 실재를 포착하는 기재인 렌즈와 붓질의 차이를 은근히 드러냄으로써 사진과 회화를 병치했을 때의 이질적인 요소를 맛깔나게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도시의 (시각) 환경을 가장 심각하게 장애의 늪으로 인도하는 것은 수십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마치 성냥과 세우듯 나열해놓은 아파트 단지들이다. 과밀도의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서 좁은 공간에 최소한의 기능만을 집약한 주거공간으로 고안된 이 아파트라는 건축물은 한국사회에서는 이제 종교보다도 더 엄숙하게 현대인을 지배하는 물신으로 자리 잡았다. 마당과 정원과 건축물의 외관을 생략하거나 무시한 채 내부공간만을 배려하는 이 아파트라는 건축물이 현대인들의 삶을 장악한 지 이미 오래이다. 송지혜는 이 끝없는 아파트들의 생장과 번식을 목도하면서 자라온 세대이다. 「다도해」는 낱개의 유인도들이 운집한 현대사회의 파노라마이다. 거대도시를 가득채운 경이로운 아파트들은 산맥보다 더 거대하고 강물보다 더 유장하게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 그 이름도 거창하고 거룩한 현대, 삼성, 벽산, 에스케이, 대림 등 동네의 색깔과 주민의 성격과는 전혀 상관없이 거대자본의 이름을 각인한 아파트들이 생태자연을 무력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자연으로 자리 잡았다. 송지혜는 건물 외관의 마크와 숫자들과 색깔들을 삭제한 채 아파트 건축물 구조 그 자체만을 그려냄으로써 아파트 파노라마를 보다 전일적인 체계 안에서 동일한 본질을 가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구조적 동일성을 반복하고 있는 현대도시의 모습을 담은 송지혜의 그림은 구조 속에 포섭된 낱개 삶의 정황을 은유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거대도시의 풍경과 장면들을 진술해냄으로써 대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주체의 시각을 보다 객관적인 사실 차원에 두면서도 도시의 전체와 부분을 넘나드는 주밍인과 주밍아웃을 적적히 안배함으로써 주관적인 감성의 차원을 노치지 않고 있다. 특히 그는 동어반복이 구조화한 아파트 공간 속에서 파편화한 익명의 개인들을 파악함으로써 현대인에게 이미 깊숙하게 내면화 한 단절과 소외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다도해」같은 대작에서 드러나듯이 도시 공간과 그 속에서 삶을 꾸리는 현대인의 삶은 아파트 건축에 의해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는 하나의 구조체이자 돌이킬 수 없는 환경으로 자리잡았다. 유인도라는 주제의식을 가진 일련의 연작들은 보다 넓은 스펙트럼으로 현대도시 속에 구조화한 삶의 단편들을 포착해내고 있다. 고립된 상황을 상징하는 무인도를 역설적으로 끌어들인 유인도라는 개념은 현대도시가 필연적으로 잉태하는 소외와 단절의 정황을 집약하고 있다. 그는 현대도시의 건축물이라는 매개체에 주목함으로써 도시인들의 개별 공간들을 하나하나의 섬으로 파악하고 그 낱개의 정황을 성찰하고자 하는 유인도라는 적략적 개념을 효율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 핵심은 현대도시의 건축물을 하나의 구조체로 파악하고 그것의 구조화 기능을 읽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현대도시의 구조를 읽어내는 송지혜의 유인도 리포트는 거대도시의 구조 속에서 파편으로 존재하는 낱개의 서사들을 엮어서 구조와 개체 사이의 대립과 공존, 화화와 갈등의 상황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